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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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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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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 (지은이), 앨버트 칸 (엮은이), 김병화 (옮긴이)
(한길사)


140*195mm / 428p / 양장제본




내가 그의 음악에 감동하는 이유 │ 첼리스트 양성원
카잘스의 초상 앞에서 │ 엮은이 앨버트 칸

은퇴 없는 삶
음악의 세상이 열리고
바흐, 내 영혼의 샘이여
젊음과 가난의 순례
땅을 딛고 일어서라
첼로와 함께 백악관 입성
인간 군상
인터뷰 당시 카잘스의 모습들
카잘스가 오늘 연주를 거부합니다
누구를 위한 음악인가
조국 에스파냐에 지는 태양
파시즘의 그림자
나의 무기 첼로
침묵! 나는 원칙을 말하자는 겁니다
말구유에 담은 평화

카잘스 연보 1876-1973
카잘스 불후의 명반들
당신은 왜 음악을 합니까? │ 옮긴이 김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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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가 구술하고 앨버트 칸(Albert E. Kahn)이 엮은『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은 제1·2차 세계대전과 에스파냐 내전을 온몸으로 겪어낸 카탈루냐 출신 예술가의 생애를 담은 책이다. 약 한 세기라는 긴 시간을 살다간 카잘스는 근현대사에 충격을 안겨준 세 차례의 전쟁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했다.

“한 예술가의 생애는 자기 이념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던 카잘스는 정치적으로 비춰지는 행보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사사로운 욕심 없는, 인류와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사랑을 기반으로 한 카잘스의 치열한 생애는 독자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준다.

‘첼로 연주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재발견하고 혁신적인 첼로 운지법을 개발한 첼리스트계의 거장. 노동의 가치를 바로 보고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알았던 공화주의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수많은 맥락과 깊이는 몇 페이지, 몇 글자의 내용 그 이상의 무게와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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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카탈루냐 출신의 첼리스트인 카잘스는 아버지로부터 최초의 음악교육을 받았고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호세 가르시아에게 첼로를, 로도레다에게 화성악을 배웠다. 이어 마드리드 음악원에서 헤수스 모나스테리오에게 실내악을, 토머스 브레튼에게 대위법을 배웠다. 1895년부터 1898년까지 파리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에서 첼로의 솔리스트 1897년 이후에는 바르셀로나 음악원의 첼로 교수를 지냈다.

생전부터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 된 카잘스는 보급에 헌신했던 첼로와 글자 그대로 하나였다. 그는 운궁법을 혁신했으며 그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정확한 조현법에 도달했다. 그리고 당시까지 전혀 쓰이지 않았던 첼로의 고음역에 관한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의 연주에는 고결하고 심원한 시정이 흘러나왔고 카잘스는 바흐와 베토벤의 첼로 작품을 일반에게 보급하는 큰 역할을 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휘자로도 활동했으며 오라토리오 '엘 페세브레'를 비롯, 70여 편의 창작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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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가 구술하고 앨버트 칸(Albert E. Kahn)이 엮은『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은 제1·2차 세계대전과 에스파냐 내전을 온몸으로 겪어낸 카탈루냐 출신 예술가의 생애를 담은 책이다. 약 한 세기라는 긴 시간을 살다 간 카잘스는 근현대사에 충격을 안겨준 세 차례의 전쟁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했다.

<삶을 사랑하던 예술가, 파블로 카잘스>

“만약 여러분이 계속 일을 하면서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반드시 늙는다는 뜻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게 될 겁니다. …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감동하고, 삶은 갈수록 더 근사해지니까요.”_29쪽

책을 여는 장 「은퇴 없는 삶」은 제목에서부터 카잘스의 인생에 대한 환희를 나타낸다. 죽음으로 종결되기 전까지 매 순간 우리는 삶에 내던져져 있다. 잠깐의 휴식과 숨 돌릴 틈조차 삶의 일부를 구성하기에 삶에 ‘은퇴’란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궁극적인 과제인 셈이다.
전 세계를 뒤흔든 격동의 시대 속에서 카잘스가 자신과 주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도 삶 그 자체에 대한 존중과 그것의 아름다움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늙음에 부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생산성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이 시대에 카잘스의 목소리는 더욱 절실하게 들린다.

<첼로 연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다>

파블로 카잘스의 이름 옆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1890년 열세 살의 카잘스는 아버지와 함께 방문한 바르셀로나의 고악보서점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총 6곡 36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모음곡은 카잘스 이전까지 각각 동떨어진 첼로 연습곡 정도로만 취급받아왔다. 하지만 카잘스는 여섯 곡을 전체로서 연주했을 때에야 느낄 수 있는 모음곡의 유기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10년이 넘는 기간을 연습한 후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공식적인 연주를 선보인다.
어떤 반주도 없이 오로지 첼로 현의 선율만으로 채워지는 이 곡은 연주자에게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부담감까지 줄 정도로 연주자의 탄탄한 역량을 요구한다. 카잘스에 의해 재발견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이후 ‘첼로 연주의 구약성서’로 불리며 첼리스트들에게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
나아가 12세라는 나이에 바르셀로나 음악학교에서 첼로 운지법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당돌한 시도를 하는 등, 논란의 여지 없는 성장 가도를 달리며 카잘스의 예술적인 재능은 현대 첼로 연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장하게 직시하고, 낙관하며 행동하던 예술가>

“그들의 말에 의하면 외교의 복잡미묘함을 내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일이 순서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_342쪽

거대한 사회적 흐름 앞에 한 명의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특히 그것이 정치와 직접적으로 결부될 때는 더더욱 큰 벽에 부딪히고 만다. 양차 세계대전과 전간기의 에스파냐 내전 한복판에 있던 카잘스는 이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선 인물이다.
1936년 바르셀로나 몬주익 궁전, 스페인 제2공화국 선포를 기념했던 그곳에서 베토벤 교향곡 제9번 리허설이 진행되던 중이었다. 마지막 악장을 시작하기 직전 한 남성이 무대로 뛰어들었다. 그는 카잘스에게 봉투를 건넸다. 그 안에는 파시스트 군대가 바르셀로나로 진격해오고 있으니 당장 연주를 중단하고 대피하라는 전보가 들어 있었다. 연주자들은 그 처참한 통보 앞에서 서로에 대한 작별의 의미로 연주를 끝까지 마치고 스산한 기운이 어린 거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첼로와 지휘봉뿐입니다. 내전 기간에 나는 내가 믿는 목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그 무기를 최대한으로 사용했습니다. …나는 식량과 의류와 의료 지원을 위한 기금 마련 자선음악회를 여느라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_298-299쪽

참혹한 내전 속에서 카잘스는 에스파냐 민주주의를 돕는 음악가위원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며 자선연주회를 통해 기금을 모금했으며, 어린이 구조재단 특별음악회에서 연주하며 내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촉구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연이어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에 온존적인 태도를 보이는 세계 각국의 태도에 깊이 실망하고 더 이상 공개적인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프라드에 은둔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가능한 실천을 찾아 나가는 그의 모습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깨달은 지금의 우리에게 행동할 용기를 준다.

“이 중대한 시기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라고 판단했어요. …전심전력으로 항의하며 …전적으로 동조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행동방식 말입니다.”_342쪽

“국가의 정책 방향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결국은 한 개인의 행동일 뿐이에요. 그렇지만 달리 행동할 방법이 없었어요. 누구나 자기식으로 살아야 하는 거지요.”_345쪽

<노동의 가치를 알았던 예술가>

1920년 카잘스는 ‘파우 카잘스 오케스트라’를 창립했다. 그 시작은 카탈루냐 민족을 위한 음악을 하겠다는 민족적 소망에서였으나, 그는 오케스트라의 성공을 또 다른 신념의 실현으로 삼았다.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나도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 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_98쪽

카잘스의 유년기는 노동자들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가 어릴 적 첼로 연주를 통해 수입을 얻었던 카페 토스트엔 인근의 노동자들이 자주 방문했으며, 카잘스는 그들이 클래식을 즐기는 모습에서 누구나 기회만 주어진다면 문화를 향유할 안목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체득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교류 속에서 노동자 개개인이 지닌 인격적 존엄을 함께 느꼈을 카잘스가 그들을 위한 음악을 생각해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부(富)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재산을 향유하지 못하고 지내야 합니까?”_253쪽

“무료 연주회를 연다는 생각은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나는 노동자들에게도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적선처럼 보인다면 그들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_253쪽

카잘스는 오로지 노동자들로만 구성된 노동자 연주회협회를 창설하고 그들만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했다. 회비는 약 1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에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카잘스는 협회의 음악 정기간행물 『프루시온』(Fru?cions)을 발간하도록 제안했고 이는 노동자들이 단순히 소비자에 그치지 않고 그들만의 음악적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후 협회는 자체적인 음악 도서관과 음악학교를 조직할 만큼 탄탄하게 성장한다.

<꾸밈없는 솔직한 목소리에 담긴 인간 카잘스>

세 차례의 전쟁과 파리 유학 시절의 생활고가 있었음에도 카잘스의 예술가적 생애는 비교적 때를 잘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예술가였던 아버지와 아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예술가의 길을 틔워준 어머니, 거리 연주에서 운명처럼 만난 첼로, 훌륭한 첫 스승이었던 호세프 가르시아, 어린 카잘스에게 연주프로그램 기획 권한과 함께 음악적 향유의 경험도 제공해준 카페 토스트의 사장, 정신적·물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해준 데 모르피 백작과의 만남 등 언뜻 보면 범접할 수 없는 한 천재의 탄탄대로 인생사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카잘스의 솔직한 목소리는 음악적 성취와는 별개로 범인(凡人)도 그의 삶에 공감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특히 연주회 전의 불안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카잘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한 분야의 거장이 짊어져야 할 무게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벌써 80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연주회 전의 불안감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예요. 그건 언제나 고문이에요. 무대에 나가기 전에는 가슴이 뭔가에 찔리는 것처럼 아파옵니다. 정말 고통스러워요. 남들 앞에서 연주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악몽이에요.”_67쪽

“엉망으로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을 보며 이상하게도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아이고 다행이다, 이제 다시는 첼로를 켜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술에 인생을 바친다는 것은 일종의 노예상태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공연 전에는 항상 지독한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_146-147쪽

<카잘스의 기쁨과 슬픔이 남기는 여운>

“한 예술가의 생애는 자기 이념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던 카잘스는 정치적으로 비춰지는 행보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사사로운 욕심 없는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세계 공통의 경험으로서의 ‘코로나19’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도 국지적인 정치 담론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사이에서 개인은 무력감에 더해 피로감까지 느끼고 있다. 이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의 생애에 충실하려는 노력은 자주 좌절되지만, 사랑을 기반으로 한 카잘스의 치열한 생애를 읽으며 독자는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파블로 카잘스’의 삶을 한 편의 교향곡으로 본다면 예술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해내는 1악장(유년기)과 그 기반을 닦는 2악장(유학시절),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착실히 쌓아나간 3악장(연주여행), 마지막으로 그것을 십분 활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한 인간의 노력이 스민 4악장(말년)으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카잘스의 약 100년에 달하는 인생이 책 한 권으로 단숨에 요약된다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음악은 수도꼭지처럼 켰다가 금방 잠가버릴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온전한 자신의 전체로 다가가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카잘스는 이 책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에서조차 전체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는 데 훌륭히 성공한 듯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수많은 맥락과 깊이는 몇 페이지, 몇 글자의 내용 그 이상의 무게와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업적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재능을 무엇에다 사용하는가 하는 용도에 관한 것입니다.”_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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