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날에는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수프' 좋아하세요?
여러분에게 빨간 날은 어떤 의미인가요?
카멜북스는 빨간 날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날'로 해석하고, 빨간 날 즐기고 싶은 취미와 취향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시리즈로 엮어 보기로 했습니다. 분야에 상관없이 '나의 세계를 채우는 어떤 것'에 대해 즐겁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빨간 날의 다섯 번째 주제는 '수프'입니다.
"인내 끝에 얻게 될 수프 한 그릇은 달다"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한 그릇의 세계
수프는 기다리는 능력이 필요한 음식입니다. 3분 요리라는 간편한 선택지가 있지만, 밍밍하면서도 인공적인 맛의 국물을 목구멍에 넘기고 있자면 신선한 재료로 공들여 끓인 수프가 생각나곤 하지요.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와 우유, 버터 한 조각만 가지고도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수프 한 그릇이 완성되지만, 단단한 채소가 냄비 속에서 차츰 뭉개져 마침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잘 끓인 수프의 깊은 맛을 알기 어렵습니다. 무슨 일이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수니까요.
'인생은 버티는 것'이라는 말은 수프 끓이는 일에도 적용됩니다. 번거로운 조리 과정을 도중에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온전히 나를 위한 한 그릇'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으로 수프 끓이는 법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책장을 넘기면 1인 가구의 세대주로서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음식이 왜 하필 수프였는지, 수련하듯 수프를 끓이며 어떤 마음이 자라났는지, 자신 있게 대접할 수 있는 수프가 하나씩 늘어나는 동안 삶의 그릇을 무엇으로 채워 갔는지, 그야말로 30대 프리랜서 여성의 도시 생존기라 할 만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수프를 끓일 때마다 바닥 난 인내심이 한 칸씩 차오른다"
성미 급한 소설가의 뭉근한 심신 단련 에세이
『수프 좋아하세요?』는 소설집 『피구왕 서영』으로 데뷔작부터 주목받은 황유미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입니다. 작품에서조차 '황급히'란 단어를 자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급한 성격의 덕을 보는 시기가 끝났음을 깨달으며 수프 끓이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수프를 끓여 먹으며 영위하는 일상은 "몸과 마음의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속도"를 조금씩 늦춰 주었고,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전작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다양한 삶의 모양을 보여 주었던 작가는, 자신이 그 세대로 불리는 현실 속에서 또래의 창작자들과 건강하게 뿌리 내리고 함께 뻗어 나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들과 함께 먹을 수프를 끓이면서 말이죠.
매일 혼자 먹을 수프를 끓이던 그는 동료 작가와 주거 공간을 공유하면서부터 자꾸만 집에 손님을 초대하며 본격적으로 수프를 나눠 먹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끓여야 하는 수프의 양이 늘어날수록 기쁨도 배가되었습니다. 냉장고 속 재료로 만든 새로운 수프를 척척 내놓으며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생활력을 장착한 어른이 된 기분"을 느끼기도 하면서요. 바삐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뭉근히 수프를 끓이는 일은 그리 대단치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대단하지 않더라도 각자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있어요. 유일하게 느슨해질 수 있는 공간에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며 나를 먹여 살리는 일, "인생은 고통이니까 수프나 끓여야지" 말하며 스스로 달래는 일이 어쩌면 매일을 버티며 끝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