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의 걸작에서 비롯된 어느 작고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만남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17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Las Meninas)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7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주요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또한 오늘날에도 20세기 예술의 대담성을 있게 한 장본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시녀들」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공주 마르가리타를 중심으로 공주의 하녀와 시동들이 등장하는 그림이다.
작가는 그 그림에 나오는 개가 사실은 난쟁이 ‘바르톨로메’이고, 그가 공주의 인간개 노릇을 했다는 것으로 설정했다. 또한 이 책에는 17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 세르반테스도 등장한다. 바르톨로메가 글을 배울 때 교재로 사용하는 책이 바로 『돈키호테』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세르반테스의 작품 세계와 세상에 대한 풍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유머러스하게 짐작할 수 있다.
바르톨로메가 「시녀들」에 등장하기까지
바르톨로메는 아빠 후안과 엄마 이사벨, 그리고 다른 형제자매들 가운데 유일하게 꼽추 난쟁이로, 어려서부터 동네 아이들한테 놀림을 받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아빠가 왕궁 마부가 되면서 가족이 마드리드 왕궁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된다. 아빠의 명령으로 바르톨로메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나무궤짝에 몸을 숨긴 채 짐짝처럼 이동하게 된다.
바르톨로메가 마드리드에서의 새 생활을 시작하면서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있는 말은 고향 마을 로드리케스 신부가 해주신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하셨다”는 성경 구절이다. 마드리드에 도착해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안에서 없는 듯한 사람으로 지내던 바르톨로메는 어느 날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제빵공기술자로 일하게 된 형 호아킨이 엘 프리모라는 왕 서기도 난쟁이라며, 바르톨로메도 글을 알면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한 것이다.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고, 다른 가족들의 도움으로 크리스토발 신부한테 글을 배우게 된 바르톨로메는 글을 쓰고 깨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배움에의 열망이 커 가던 어느날 바르톨로메의 누나가 빨래통에 숨겨 바르톨로메를 운반하던 중에 공주가 타고 가던 마차와 부딪혀 빨래통이 깨지는 바람에 바르톨로메는 길 한가운데에 나뒹굴게 된다. 파란 잉크를 뒤집어쓴 바르톨로메를 보고 어린 공주는 인간개로 데리고 놀겠다며 왕궁으로 데리고 간다. 온갖 수모 속에서 개 노릇을 하던 바르톨로메는 인간개 분장을 위해 벨라스케스의 화방을 오가던 중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고 도제 안드레스의 도움으로 그림에 눈뜨게 된다.
그러면서 바르톨로메는 도제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하고 자신에게 미술적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벨라스케스가 「시녀들」을 완성하면서 바르톨로메에게 부여하려 했던 인간적인 존엄성은 바르톨로메 스스로 자신의 등을 짓밟고 서 있는 다른 난쟁이의 발을 묵묵히 견뎌내는 개의 모습에서 의연하게 참아내는 자신의 모습을 봄으로써 되찾게 된다. 뒤늦게 자식을 불쌍히 여긴 아빠와 바르톨로메의 재능을 높이 산 왕궁 화가들의 도움으로 바르톨로메는 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장애를 보는 또 다른 시선
중세의 기독교적 가치관에 따르면 당시 바르톨로메 같은 장애아는 하늘로부터 벌을 받은 죄인으로 간주 되었다. 이런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글을 배우면 자기 스스로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던 바르톨로메는 공주의 ‘인간개’가 되어 개처럼 기고 짖어야 했다. 개 의상을 뒤집어쓰고 개처럼 분장한 바르톨로메에게 인간의 모습을 일깨워 준 것은 그림의 세계였다. 벨라스케스는 실제로 왕족의 인물화나 초상화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궁핍한 일상이나 궁정에서 생활하는 난쟁이, 어릿광대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거나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불운한 사람들이 지닌 위대한 존엄성, 감성, 날카로운 지성과 소통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책의 작가는 그런 벨라스케스의 마음을 읽고, 육체적 장애에 뛰어난 잠재력을 부여해 인간 존엄에의 믿음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장애인 돌보는 일에 몸소 나서고 있는 작가이기에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장애에 대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들려줄 수 있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