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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문장
/ 스페인에서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잘잘못을 굳이 따지자면 스페인의 잘못이다. 스페인에는 하필 맛있는 술이 많으며, 그 술이 저렴하며, 안주도 끝내주며, 햇살과 바람이 술 마시기 딱 좋은 날씨를 연출하며, 나와 짠-을 해주는 프렌들리한 사람들도 있다. 술 권하는 사회인 것이다. 물론 내 기준에서.
/ 고작 분수를 보려고 모이는 수천 명의 사람들. 겨우 움직이는 물을 보려고 모이는 사람들. 그들의 낭만이 좋다.
/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무작정 들춰보는 수밖에 없다. 사실 들춰봐도 찾는 책이 없을 확률이 높다. 대신 이곳에서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그건 당신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 그러니 효율성일랑 마음 속에서 지우고, 보른 지구에서는 구글맵을 끄고 다니자. 구글맵은 보른 지구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가리키지 않는다. 어슬렁어슬렁 보른 지구를 표류하는 길고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자. 아무리 헤매도 길이 있으니 매일매일 발이 가는 대로 돌아다니자.
/ 바르셀로나가 점점 지겨워지고 있다. 나는 이 지겨움을 사랑한다. 이 집도 거리도 점점 마음 속에 스며든다.
/ 하나 언니와 형부네 집은 적당히 편안한 곳이었다. 호텔 침구는 아니어도 침실은 청결했고, 근사한 뷰는 없었지만 아침마다 햇빛과 바람이 충분히 들어왔다. 이케아의 가구들로 아늑하게 꾸며졌으며 무엇보다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아주 가까웠다. 부엌의 상부장에는 들기름과 올리브유와 간장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우리의 쿠쿠 밥솥이 취이이거리며 맛있는 쌀밥을 만들어주었다.
/ 이렇게 햇살을 즐기는 사람인 줄 몰랐다. 스페인의 해는 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햇빛 알레르기 같이 두드러기도 일어났다. 이마와 콧잔등이 그을렸다. 발등은 샌들 모양대로 새까맣게 탔다. 왠지 그 선명한 경계선이 자랑스러웠다.
/ 이 도시를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 이곳 어린이의 일기장을 엿보고 싶어요. 그러면 안되는 걸 알지만서도요. 아마 연월일 칸 옆의 날씨 칸은 없을 것 같아요. 왜냐면 매일매일이 ‘오늘은 맑음’이니까요.
/ 마늘향이 나는 탱글한 새우도 맛있지만 나는 감바스와 먹는 빵이 더 좋다. 곁들여 나오는 바게뜨에 새우를 조심스럽게 올려서 한 입 먹고, 빵에 오일을 듬뿍 묻혀 흐물흐물하게 만든 다음에 또 한 입 먹는다. 맞다. 나는 감바스 찍먹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