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평론은 꽤나 의아하게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이야말로 ‘데이트폭력’, ‘여성혐오’를 소재로
하되, 데이트폭력 그 자체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들과 시선들에 대해서 집요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각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이라는 경계를 짓고 차별화하려 하지만,
언제든지 나에게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 과정을 보며, 우리가
같은 약자임에도 서로를 미워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어쩌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혐오하는 마음에 있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는 페미니즘을 향한 강한 투쟁보다는 오히려 자기 성찰이자
자기 고백에 가깝다.
_〈강화길은 화이트 호스 없이 온다〉 중에서
강화길의 소설은 결코 ‘여성도 가해자가 될 있다’라는 단순한 얘기로 끝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그 가능성이란 고정된 모습으로만 여성 인물을 쌓아온 문학사에 의식적으로 새로운 여성의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강화길은 모든 서사의 시작과 끝에 여성을 놓으면서, 여성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사소하고 평면적인 것으로 만들며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외쳐온 기존 사회 인식을 가차없이 흔든다.
그 속에서 남성은 철저하게 등장하지 않거나 한없이 평면적인 반면에 여성들은 그 역할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입체적이다. 남성─여성의 권력관계가 아닌 여성들 사이에서의 역학 관계만을 남겨두었을 때, 우리는 기존
많은 서사들이 반복해왔던 ‘남성─입체적인 인물이자 주연, 여성─평면적인 인물이자 조연’이라는 틀을 벗어난
통쾌함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_〈다락방의 미친 여자들─강화길ver.〉 중에서
〈가원〉에도 결국 모녀 관계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하지 않는다. 연정에게 남은 숙제가 자신의
고민이라고 말한 걸 보면, 강화길도 아직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앞으로 출간될 〈대불호텔의 유령〉, 〈음복〉,
〈치유의 빛〉의 장편 버전에서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을 테다. 잘은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연정이
상상하는, 강화길이 상상하는, 우리가 상상하는 부모 자식 관계, 미래는 우리 외할머니들, 엄마들이 걸어온 것과는
다르리라는 점. 그러나 그 답이 무엇이든 딸들 혼자서 얻은 것은 아니다. 엄마들이 살아온 시간을 딛고 도달한 답일
테니까. 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_〈강화길과 나의 다정한 유전〉 중에서
강화길의 인물들을 만나며 참고 참아온 서러움이 터지면서 과거의 나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피하고 묻어두었기에
나도 잘 모르던 ‘나’가 그곳에 있었다. (...) 《괜찮은 사람》의 인물들은 내게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의 행동 하나 몸짓 하나 알량하고 삐죽한 마음 하나를 통해 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이대로 산다면 앞으로도 괜찮지 않다는 것이 자명했다. 그렇기에 바꾸고 싶었다. 제자리 걷기의 바퀴에서
내려와 다음 페이지를 꾸리고 싶어졌다.
_〈괜찮은 사람들의 가난한 마음들〉 중에서
강화길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진실의 일면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차곡차곡 쌓인다. 그렇게
쌓이면 모든 진실이 뚜렷하게 잘 보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난다.
화해와 용서도, 쉽게 복수도 이루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이야기가 끝난 이후엔, 조금 더 바라게 된다. 적어도 진실의 복잡한 목소리를 이젠 내가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내 차례이니까.
_ 〈미운 우리 주인공〉 중에서